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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에서 태어난 룰라 당선인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최대 경제도시 상파울루시 근교로 이주한 뒤 7세 때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로 가족의 생계를 도우며 궁핍을 뼛속에 새겼다.
10살 때까지 읽고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초등학교(5학년) 중퇴 후 14세 때부터 상파울루 인근 상베르나르두두캄푸 지역의 한 금속업체에서 공장 근로자로 일을 하다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 일부를 잃었다. 그는 이를 두고 "평생 슬픔과 한으로 여겨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1969년, 함께 공장을 다녔던 첫 부인을 산업재해성 질병으로 하늘로 떠나보낸 뒤 룰라 당선인은 노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했다. 사망 당시 부인은 임신 상태였고, 치료비가 없어 병원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1975년 10만명의 노조원을 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앞장서며 구속 등 탄압에도 잇따른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덕분에 개혁 성향의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엔 상파울루시 인근 3개 지역 노조가 참여한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1980년 초 산별노조와 좌파 지식인들을 규합해 노동자당(PT)을 창당한 룰라는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984년부터는 당시 민주화운동의 대명사였던 '디레타스 자'(Diretas ja)로 불리는 대통령 직선제 쟁취 운동을 전개했고,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데뷔했다.
내친김에 대선까지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1989년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는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에게 분패했으며,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는 페르난두 카르도주 후보에게 패하며 보수층의 높은 장벽 앞에 거푸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강성 이미지 가득했던 그에게 '3번 내리 낙선'은 약이 됐다.
'부드러운 룰라'를 전면에 내세우고 출마한 2002년 대선에서 룰라 당선인은 기업인 출신 조제 알렝카르를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켰고, 결선에서 61.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리며 3전 4기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1기 룰라 정부의 시작이었다.
실용 좌파를 표방한 룰라 정부는 나중에 '보수주의자보다 더 보수적인 뜻밖의 보수'로 평가받기도 한 일련의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한편 빈곤층 해소를 위한 분배 정책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호응을 얻었다.
2005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많은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보다 앞선 2004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브라질을 찾아 정상회담을 하며 신뢰를 쌓았다.
2006년 재선에 성공하며 2기 룰라 정부를 이끈 그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확대를 위시한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을 이어가며, 빈곤에 허덕이던 수백만 명의 주민을 비롯한 국민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2010년 임기를 마친 뒤 물러날 당시 지지율은 80%대에 달할 정도였다.
룰라가 집권한 2003∼2010년 8년간 브라질은 연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몰라보게 달라졌다. 하나의 '혁명'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외화보유액은 집권 초기보다 10배 많은 3천억 달러에 육박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도 다 갚으면서 브라질은 만성 채무국에서 채권국이 됐다.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 등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2천800만 명을 빈곤에서 구제했고, 3천600만 명을 중산층에 편입시키면서 중산층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측근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비리는 룰라의 성공 신화에 빛을 발하게 했다.
급기야는 그 자신도 재임시절 부패 의혹으로 퇴임 후에 큰 시련을 겪었다.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2016년에 구속된 뒤 이듬해 1심에서 9년 6개월, 2018년 2심에서 12년 1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 절차에 흠결이 있다"는 2019년 11월 연방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이어 아예 1·2심 선고가 모두 무효가 되면서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이날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하면서 명예 회복과 함께 완벽하게 부활의 서사를 그려냈다.